미스테리한 연속체  Mysterious Continuum
 
최솔구 (디스위켄드룸 큐레이터)
 
 
점진적인 이행 Gradual Transition

이은경은 일상의 사물들에서 미적인 것의 징후를 포착하는데 능숙하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모은 돌, 수분이 빠져 쪼그라든 모과, 거뭇한 반점이 나타난 귤, 이어 붙인 빨대, 뿌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식물, 마로니에 나무의 열매, 투명한 아크릴 입방체, 귀퉁이가 깨진 컵, 조각난 캔버스 그림. 모두 작업실 선반에 놓여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사물들의 목록이다. 작가는 쓰임새를 잃어가고 서서히 변화하는 사물들이 시간을 지연시켜주는 촉매제의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다른 차원이나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상상을 한다.

작가의 상상처럼 일상의 경험에서 건져 올려진 소재들은 일련의 조형적 실험을 거쳐 미지의 차원으로 옮겨진다. 그 실험은 대상의 일부분을 의도적으로 생략·확대·연장하고 빛의 공간으로 전치되는 흰 배경이나 편평한 색면과 통합하는 식이다. 또는 이미지를 분할하고 재조립하여 2차원과 3차원 공간 사이의 틈을 드러내거나 유약한 재료의 물성을 활용해 물리적/시각적 균열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시도들은 유연하게 움직이는 시공간을 이해하기 위한 인식적 차원의 작가 태도로 보인다.

특히 템페라 작품 「Collected Samples」시리즈는 견고한 세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전복시키는 여러 층위의 장치를 갖고 있다. 작가는 원형의 캔버스 위에 내구성이 약한 템페라와 유기물 재료를 사용하여 수 십 겹의 레이어를 만들고, 그 위에 주변에서 수집한 인스턴트 이미지를 그려 넣었다. 그 후 거친 사포로 갈아내거나 둥근 캔버스를 공처럼 굴리는 퍼포먼스를 통해 작업물의 표면을 의도적으로 탈락시켰다. 물리적 유약함은 재현의 구조에 균열을 일으켜 환영의 유약함을 증명하는 장치로 설계된 것이다. 손쉽고 익숙한 이미지들은 단발적으로 작용하는 표피였음이 드러나고, 동시에 회화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은 배반된다. 이미지 아래 물감 층의 단면이 노출되는 순간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차원과 조우하고, 이 때 퇴적물처럼 축적된 시간은 현재의 타임라인에 포개어진다.

미스테리한 연속체 Mysterious Continuum

유체역학에서 연속체 이론은 유동적인 물체가 급격한 변화나 불연속성 없이 다른 조건으로 전이되는 것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은경의 작품에서 포착되는 ‘익숙한 것이 생경하게 변모하는 흐름’은 연속체의 움직임과 닮아있다.

우리는 「Chalk2」에서 모과의 노란 색이 분필의 획으로 변하는 지점이나 「Inverted Triangles」시리즈에서 꽃병의 꽃다발이 녹색의 역삼각형 또는 흰 공간으로 통합되는 경계를 분절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대상과 배경 혹은 중심과 주변의 분기점은 모호하고, 상태의 변화는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에너지로 나타난다. 생물이 무생물로 변하고 존재가 부재로 바뀌는 미스테리한 이미지는 작품을 둘러싼 공간과 시간을 역전 가능하고 중첩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개인전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Wind」는 단풍나무 씨앗을 구(sphere)위에 나선형으로 이어 붙여 만든 오브젝트이다. 같은 크기의 오브젝트 세 점은 씨앗이 연결된 방향에 따라 각각 하나, 두 개, 세 개의 결을 갖고 있어, 구의 표면 위로 기체가 대류를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이 유동적 흐름은 말라서 바스러질 것 같은 씨앗에 바람을 따라 움직여 새로운 싹을 틔울 수 있는 에너지가 내재되어 있음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회화에서 익숙한 것이 다른 차원으로 옮아가는 변화와 이동의 모습을 쫓았던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흐름을 촉각적으로 구축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형식 또한 연속체의 구조를 차용하여 구성되었다. 전시 공간은 일시적으로 ‘라이브 템페라 스튜디오(The Freshest Painting)’로 바뀌어 재료의 물성을 탐구하는 작가의 작업실로 운영되고,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템페라 작품들은 개인전에서 전시된다. 전시 종료 후에는 이은경의 작품을 주제로 조형석 디자이너와 협업한 ‘리센트워크갤러리(Recent Work Gallery)’ 프로젝트의 이미지를 전시장 밖의 일상 공간에 동시다발적으로 ‘포스팅’ 할 예정이다. 개인전, 스튜디오, 리센트워크갤러리 프로젝트라는 세 개의 축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응력’을 만들어 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