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락
 
크리스틴 라이
 
 
 
2월28일
 
수일에 걸친 발굴 끝에 흙빛 먼지를 둘러쓴 화병 파편들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베수비오 산이 천년도 더 전에 덮어버린 유적을 우리가 처음으로 목도하는 것이다.

수 주 동안 빌라 한구석에 머물며 화산재와 자갈로 덮인 흙과 먼지를 한 층 한 층 벗겨낸 끝에 드디어 고대의 지반에 다다르려 하고 있다. 각각의 층은 이 땅 아래 묻혀 버린 도시에서 한 때 펼쳐졌던 시간,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벌써 현장에 온 지 2주째지만, 지금서야 겨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3월2일
 
방에 대한 연대기에 더할 출토품의 그림과 기록을 작성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발굴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손상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상세한 기록은 출토품이 화산쇄설물 아래로부터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순간을 잡아내어 보존하는 타입캡슐 역할을 한다. 출토품의 일부는 노출로 인한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기록한 후 다시 묻을 것이다. 화산은 파괴하는 만큼 또 보존해 주기도 한다.

오후에는 집단 주택 (insula) 중 한 채의 구조 연대 측정 과정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 오류에 대해 논의를 했다. 지속적으로 연대와 일자를 확인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토사 퇴적물에 대한 분석을 더 심도 있게 진행하면서, 상세한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회갈색빛 진흙을 다시 살펴보고 벽과 바닥 간의 상호작용을 관찰했다. 토사에는 단순한 먼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3월8일
 
한 시간 전, B의 여동생  H로부터 그의 죽음을 알리는 이메일을 받았다. 또다른 과거의 유령.

B와의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지 벌써 15년. 마지막으로 손을 잡은 것이 20년 전. 박물관 창고에서 처음 만났던 때로부터 28년.
 
3월10일
 
우리는 역사에 질문을 던진다. 때로, 역사가 조용한 목소리로, 내지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대답을 하기도 한다. 그 의미를 해독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B와 나는 박물관 뒤편, 카탈로그에 기록할 물건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창고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머나먼 곳 어딘가에서 온 화병, 물병, 그리고 토기들의 창백한 잿빛을 배경으로 돋보이는 밝은 노란색 셔츠(일종의 카드뮴 엘로우 같은 )를 입고 있었다. 당시 B가 박물관 레지던스의 입주 작가였기에, 우리는 함께 카탈로그 작업을 했다. 매일 소장품들을 손으로 다루고, 관찰하고, 글로 묘사했다. 카탈로그는 우리가 처음으로 한 공동작업이었다.

다음으로 같이 만든 것은 함께하는 삶이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내 애초의 예상과 달리) 발굴보다는 건설 작업에 가까웠다. 기억과 사건이 빠른 속도로 쌓여 가고, 한 층에서 다음 층으로 나아간다. 데이트를 하고, 연인이 되고, 동거인, 다음으로는 배우자가 되면서, 결국에는 서로 이해하지도 알아보지도 못하는 거대한 미로를 지어 버렸던 것이다.

당시 우리가 함께 작업하던 박물관 컬렉션은 창고 뒤편으로 옮겨지면서 다른 소장품과 프로젝트에 자리를 내어 주고 말았다. 같이 일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3월14일
 
발굴 현장에서 더 많은 화병과 암포라 파편이 나왔다. 곧 벽에 대한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18세기의 한 여행자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그 아래 프레스코화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어느 해 생일이었던가, 아니면 무슨 기념일이었던가에 B가 선물로 준 책을 갖고 있다. 제목은 <풍경화의 역사>지만, 그 내용은 소중한 누군가를 잃고 상심한 나머지 영국 시골을 떠도는 화가의 개인사와 회상을 담고 있다. 갤러리나 박물관에서 이 화가의 작품을 본 기억이 있다. B가 선호했던 표현주의 류의 기법. 멀리서 볼 때에는 헐벗은 겨울 나무처럼 쭉쭉 뻗은 선들 뿐이었지만, 더 가까이 다가서면 작가의 손에서 전달된 호흡과 떨림, 미세한 진동과 움직임이 느껴져서 좋았다.

책은 둘이서 공유하는 일종의 일기 역할을 했다. 번갈아 읽으며 B는 검은 색으로, 나는 붉은 색으로 밑줄을 그었고, 그렇게 표시한 구절들은 말없는 생각들의 기록이 되었다. 때로, 그는 “버밀리언”이나 “소멸”과 같이 자신의 느낌을 대변하는 듯한 단어들에 밑줄을 쳤다. 또, 우리 둘 다 내용과 관계없이 다른 책에서 따 온 구절들을 페이지 귀퉁이에 적어 놓기도 했다.

헤어진 뒤, 책은 나의 것이 되었다. 해가 감에 따라 책장에 붙인 글, 사진, 스크랩, 메모, 지도 등이 쌓이면서 책은 표지가 부풀어 오를 정도로 두터워져 갔다. 본문은 이제 내가 붙인 쪽지들로 뒤덮여 거의 보이지도 않지만, 그 일부는 여전히 시야에 들어온다.

들판은 석양 아래 푸른 빛으로 황홀하게 빛난다. 이 푸른 지구는 아름다움의 살아 숨쉬는 고향이다. 들판을 거닐고 있노라면, 나의 움직임에 맞추어 아름다움이 장막을 펼친 듯한 느낌이다.
 
3월20일
 
발굴은 파괴적인 과정이다. 느리고 신중하게 진행된다. 2천여년에 걸친 건설과 매몰, 발굴, 침식, 전쟁을 거친 뒤인지라 건물들의 본모습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벽들이 스러지고, 다시 서고, 또 무너진다. 누군가가 문을 메우면, 다른 누군가가 또 다시 길을 낸다. 우리가 지금 발굴하고 있는 빌라에서도 벽들이 무너지고, 바닥이 갈라지고, 대리석 타일이 도굴당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합군의 폭격에 정원의 연못이 파괴되었다. 건물의 내부 정경은 이렇게 계속 변화해 왔다.

B가 언젠가 읊은 시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B는 늘 뭔가를 인용하곤 했다. 침대의 한쪽과 다른 한쪽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져만 가는 거리감에 대한 내용이었다. 내가 원하던 발굴단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 뒤의 일이다.

얼마나 오래 가 있을 건데? 그가 물었다.

일년 정도. 좀 더 있을지도.

여기서의 우리 생활은? 그가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같이 갈 수도 있잖아. 내가 말했지만, 그는 침묵했다.

이미 한 번 B의 죽음을 애도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멈추었을 때, 그는 이미 한 번 죽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이미 한 번 경험한 일인지도 모른다.

역사와 비가는 친족 관계로 얽혀 있다.”
 
3월27일
 
오늘은 파편을 세척하는 현장 조사단의 신입생들을 감독했다. 조심스럽게 시작해서 침착하게 체로 걸러 가며 토기 조각, 모자이크용 각석, 조개껍질, 석기, 석고, 그리고 2차 세계대전 폭격의 잔해에 붙어 있는 금 파편을 찾는다. 세척이 끝난 파편은 다시 접착제로 붙여야 한다. 체로 치면,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세밀한 유기재를 걸러낼 수 있다. 물탱크에 담그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생선뼈, 포유류의 뼛조각, 조개껍질, 올리브 씨와 같은 것들. 오래전 존재했던 삶들의 단락을 보여주는 잔해물이다.

 기록 보관소는 하나 없이 빽빽한 숲과 같다. 그러나, 안에 오래 머물고 있노라면 눈이 점차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나무의 윤곽을 파악할 있게 된다.”
 
3월30일
 
오늘 아침, 학생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쌓인 층의 색과 구성을 관찰하여 그 층서적 맥락을 기록했다. 폼페이의 생활상에 대한 강연을 듣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들의 운명을 눈 앞에 그렸을 시민들의 폼페이 최후의 시간을 상상했다.

재해란 무릇 예고없이 닥치게 마련이다. 징조가 있었다 해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폼페이에서도 지진을 앞두고 샘물이 말랐지만, 아무도 이를 코 앞에 닥친 멸망의 전조라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수많은 이들이 그대로 도시에 머물렀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와 속돌, 그리고 바위가 그들 위에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용암과 화산 진흙, 그리고 뒤이어, 어둠.

“재해 disaster” 란 단어는 이탈리아어인 dis-astrato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글자 그대로 “de-starred,” 즉 굽어 보호하는 별들에게서 버림받아 운명의 파도에 몸을 내맡기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사이에서도 애정이 식어가는 징후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관계를 엮어 나가는 과정은 별개의 순간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겠지만, 그 파탄은 명확한 서사의 틀로 규정하기가 불가능하다. 어느 날인가, 거실에 앉아 나를 기다리던 B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피로의 기미를 기억한다. 침대에 누울 때 그가 양손으로 머리를 받쳐 나와 팔이 닿지 않도록, 내가 그의 어깨에 머리를 누일 수 없도록 피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오래된 크리스마스 카드와 생일 카드가 재활용 상자 바닥에 하릴없이 버려져 있던 광경을 기억한다.

함께 쌓아 올린 삶을 보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는 소유물을 하나씩 나누기 시작했다. 목록에 따라 박스에 나누어 담은 물건들을 집 양끝에 쌓고 각자의 목적지로 보냈다. 책, 의자, 커피 컵, 접시, 그리고 쿠션. 그 많은 물건들이 품은 이야기들을 기억할 수가 없었다. 아니, 기억하지 않기로 했다.

기억은 여행과도 같다. 시발점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선명함은 줄어들지만 사무침은 더해간다. 마치 고향에 대한 그리움처럼. , , 시간이 흐를수록 가슴에 파고드는 칼날의 각도가 달라질 뿐이다.”
 
4월6일
 

빌라 내부의 다른 곳으로 옮겨 벽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4월13일
 
 다른 팀이 이웃 빌라의 가정 수호신을 모신 사당에서 새로운 프레스코화를 발견했다. 푸르른 아름다움의 거침없는 향연. 작은 새들이 무성한 잎새 덤불 위를 날아다니고, 뱀들이 구비구비 푸르른 초목을 둘러싸고 있다. 협죽도, 도금양, 또 데이지 꽃이 한아름. 영생의 상징인 솔방울이 프레스코화의 눈에 띄는 한 켠에 자리잡고 있고, 로마인들이 성스럽게 여겼던 수풀(lucus)도 눈에 들어온다. 부패한 정치와 상거래의 세계를 벗어난 자연의 아름다움. 이 정경을 보는 이들은 프레스코화 안에 펼쳐진 낙원에 초대받지만, 벽 속 이상향에는 끝내 닿지 못한 채 그 물질성에 막혀 자신만의 공간에 갇혀버리고 만다.

“초록  흙 ” (Green Earth)은  이 프레스코화에 쓰인 안료의 이름이란 사실을 배웠다. 토양에서 추출한 색으로, 셀라도나이트와 해록석이라는 유기물로부터 연원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빛깔들 또한 다른 프레스코화나 벽화에서 보듯 햇빛과 비바람에 노출되면서 결국 바래고 말 것이다. 폼페이 특유의 붉은 빛을 띈 프레스코화들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사실 “붉다”는 표현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본래는 노란색이었던 (베수비오 산에서 나는 나폴리 옐로우라는 납 기반의 독성안료로 비교적 저렴함) 안료가 화산 가스에 반응해 주황빛이 도는 붉은 색으로 변한 것이기 때문이다.

눈 앞의 화석화된 재에서 아름다운 숲과 새들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기억 푸르른 언덕들을 그린다. 멀리 보이는 첨탑과 공명하는 초록빛의  들판 위로 퍼지는 .
 
4월20일
 
벽에 켜켜이 쌓인 층을 벗겨내고 있지만, 초록빛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갈색조를 띈 구릿빛과 회색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을 뿐.

눈 앞의 지층들을 보고 있노라면 모르는 것,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역사가 이 혼돈을 정돈해 줄 것이다. 역사를 쓰는 행위를 통해 책의 형태로, 사람들과 장소, 물건 등 모든 것을 각각의 상자에 담아 넣고 라벨을 붙여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시작 단계일 뿐.

B와의 사이에서 느꼈던 친절이나 사랑과 같은 기억을 떠올리려 애쓴다. 분명히 있었겠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간의 뇌야말로 자연적인, 그리고 강력한 다층적 기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뒤따르는 과정 하나 하나가 앞서의 단계를 덮어 버리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4월24일
 
오늘은 쉬는 시간 동안 보존실에 피오렐리  석고본들을 보러 갔다.  인체의 석고 본이 여러 도구와 토기 파편, 그리고 그 외의 여러 물품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을 보니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한 생각도 든다. 그렇게 속을 비워내어 버린 사람의 형상을 밖에 내놓아 두는 것이 어쩐지 불경하게 느껴진다. 팔다리의 거친 마디, 남은 뼈를 감싼 채 화석화된 재의 형태. 그들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고대의 언어로, “당신의 삶을 바꿔야 한다,”고.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 <이탈리아로의 항해 >Voyage to Italy를 보면 폼페이를 방문해 인체 석고 본을 구경하는 부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석고 본은 겉은 멀쩡해도 속이 텅 비어 있는 결혼생활을 상징한다. 나도, 결혼 초기 B와 함께 폼페이에 온 적이 있다. B가 당시 스위스에서 작가 레지던시에 몸담고 있어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B는 새 카메라를 시험해 본다면서 폐허를 흑백 사진에 담았다. 화산폭발이 그러했듯, 카메라 역시 눈 앞의 정경을 얼어붙은 시간 속에 가두었다.

내가 각별히 좋아하던 사진이 있었다. 창문 두 곳을 통해 저 멀리 폐허가 된 벽이 보이고, 창문 주변을 둘러싼 빛 바랜 프레스코화는 목가적인 그림을 담고 있다. 사람들이 나무 아래 한가로이 앉아 있고, 그 뒤로 정자가 보이는 풍경. 나무에 기대어 세워놓은 봉헌된 편액의 글씨는 세월에 씻기어 흔적만이 남아 있다. 가까이에서 작은 흰 새들이 날아다닌다.

B가 그 프레스코화를 좋아하던 것을 기억한다. 정자 옆 나무가 자연과 인간 세계의 인공물 간의 대비를 강조해 주지만, 사람이 만든 기념물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폐허로 스러지는 데 반해 자연은 지속적으로 재생하고 순환하며 살아남을 것이라며. B는 폼페이에서 죽은 대 플리니우스의 말을 자주 인용하곤 했다. “대지는 우리 인간들까지 성스럽게 만들어 준다. 우리가 만든 기념물과 비명을 품어 주고, 우리들의 이름을 기억해 주고, 한정된 시간 속으로 사라져 가는 우리들의 기억까지 붙들어 주면서.”

<풍경화의 역사>에 끼워 놓은 그 사진에 등장하는 벽을 케이의 집에서 찾아냈다. 눈 앞의 이미지는 어째서인지 2차원적으로 다가온다. 돌과 프레스코화의 표면 질감이 앞 벽과 뒷벽 간의 차이를 무화시키는 듯하다. 지금 사진을 보니, B를 사랑하는 것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 시작한다.

다음 번에 비가 내릴 때면 방울의 아침 이슬을 통해 포기를 들여다보라. 초록이 아닌 푸른 빛을 띈다는 것을 알게 것이다.
 
4월25일
 
오늘은 빌라 베스탈리의 “푸른 방”에 갔다. 사실 “푸르다”기에는 어폐가 있다. 본래 밝은 이집트 블루 빛을 띄었을 프레스코화의 색채가 수백 년의 세월에 씻겨 바래 버렸기 때문이다. 원본의 유일한 기록이라는 18세기 그림의 사진을 옆에 놓고 대조해 보았다. 벽은 전체적으로 갈색 층에 덮여 있었고, 겨우 한구석에만 푸른 가루가 말라붙어 있었다. 누군가, 시간의 흐름과 고향의 상실을 이야기하며 “그 외에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고 했던가. 하지만 푸른 빛 안료의 잔해를 보고 있노라니, 무엇이든 그 중 일부는 남는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했던 시절 B와 숲을 거닐던 기억. 앞서 걸으며 나무와 초롱꽃을 카메라에 담다가도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던 B는 갑자기 수풀 속에 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숲 속에는 우리 둘 뿐이었다. 노래의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함께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에 맞추어, 나무들을 향해 손짓하며 가슴이 터질 듯 목청껏 불렀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수풀 사이로 비가 스치고 지나간 나뭇잎들의 냄새, 젖은 흙의 감촉,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들판의 정경을 떠올린다. 이런 게 그를 사랑한다는 느낌이구나.

아름다운 형상들을 이후로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제, 그들은 멀었던 이가 처음 바라보는 눈부신 풍경과 같이 내게 다가온다.
 
5월1일
 
이제는 석고에 갇혀 버렸지만, 화산이 폭발하기 전에는 다른 모습으로 한창 피어나던 삶이 존재하던 시절. 지금과는 다른 지형이 존재하던 시절. 이제는 없는 건물과 나무, 언덕이 이 땅에 서 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점점 더 머나먼 과거로 파고든다. 아직도 발굴할 것이 너무 많다. 도시의 정경은 저 멀리 지평선에 가 닿을 만큼 드넓지는 않지만, 땅 속에 뿌리 박힌 기둥과 같이 깊게 뻗어 내린다.
 
5월2일
 
오늘, 드디어 마지막 화산재 층을 걷어내고  선명한 초록빛 표면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